"'서른 즈음에' 처음 들었던 순간, 전율 그 이상이었죠"
[인터뷰] 김광석의 명곡을 영어로 노래한 싱어송라이터 루크 맥퀸
(서울, 오마이뉴스) December 24, 2021 -- 이종성(lifemaker) -- "'서른 즈음에' 처음 들었던 순간, 전율 그 이상이었죠"
루크 맥퀸(Luke McQueen)은 우리 나이로 쉰 살 무렵 첫 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한 중견의 신인아티스트다. 미국 콜로라도에서 성장해 IT 엔지니어 회사와 컨설팅 회사에서 15년 넘게 일을 하다가 2013년 우리나라에 와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8년 전 해외 입양인들이 한국 방문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처음 자신이 태어난 땅을 밟게 됐다. 1977년 다섯 살 때 미국의 한 가정으로 입양돼 자라고 성장해 성인의 삶을 살아가던 루크 맥퀸. 불혹의 나이가 돼 친부모를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꿈은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기회를 준 한국에 정착을 했고, 어린 시절부터 삶의 탈출구이자 결코 놓치 않았던 음악을 여러 주위 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하게 됐고, 작년 하반기에는 EP 올 하반기에는 <굿 씽(Good Thing)>이란 제목의 정규앨범을 공개하며 뮤지션으로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특히 고 김광석이 남긴 명곡 '서른 즈음에'를 '어라운드 30(Around 30)'란 영어제목과 노랫말을 붙여 리메이크해 화제를 모았다. 여전히 한국말이 서툴러 홍보 활동에 제약이 많다는 루크 맥퀸. 다가오는 2022년에는 '서른 즈음에'와 영어로 노래한 앨범 주요 수록 곡을 공개된 라이브 무대에서 우리말로 완벽하게 부르고 싶다는 포부를 인터뷰 말미에 드러내기도 했다.
이제는 대한민국 땅에서 영원히 정착해 살고 싶다는 루크 맥퀸과 17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
- 앨범 소개를 해 달라.
"첫 번째 정규 음반으로 한국에서 보낸 지난 8년 동안의 내 삶을 음악으로 표현해 냈다. 한국을 포함 미국, 칠레, 캐나다의 현지 음악인들도 큰 도움을 줬고, 꿈꾸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 졌다. 그리고 뮤지션으로서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출발선상의 작품이다."
- 작년에 냈던 EP의 연장선상인 것 같다.
"작년 10월 말에 <롱잉(Longing)>란 제목으로 5곡이 들어간 EP를 냈었다. 발표 후 반응이 좋아 지금 소속회사에서 몇 곡을 더 완성해 정규 앨범으로 내자는 의견을 줬고, 기존 노래에 7곡이 더해진 <굿 씽(Good Thing>이 지난 달 말에 나오게 됐다."
- 싱어송라이터로서 수록곡들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을 12곡으로 대신하기엔 너무 부족하게 느껴졌다. 앨범을 기획하면서 가진 생각은 삶에 대한 인생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랑, 희망, 기쁨 등. 물론 슬픔과 아픔도 몇몇 수록 트랙을 통해 담아냈다."
-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노래가 있다면?
"먼저 '롱잉'과 '디스어피어링(Disappearing)'을 추천하고 싶다. 두 곡은 연장선상에 있는데 나를 미국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한국의 부모님, 특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롱잉'의 가사로 썼는데 입양·희망·소통·연결의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디스어피어링'은 힘든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절박했고 어쩔 수 없었던 현실을 노래로 표현했다.
이번 정규음반의 타이틀 곡 '굿 씽'도 들어보셨으면 한다. 우리의 삶에 '기쁨'이란 긍정의 메시지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음악으로 옮겨 놨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나란 뮤지션의 존재를 알게 해 준 '어라운드 30(Around 30)'을 빼놓을 수 없다.(웃음)"
- 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영어로 개사해 불렀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2017년 한국의 모 음악저작권협회에서 일을 하고 있을 무렵 당시 대표님께서 김광석님이 이 곡을 부르는 동영상을 보여 주셨다. 그 분의 표정과 음성만으로도 이 곡이 명곡임을 알게 됐고,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영어로 노랫말을 썼고, 이후 여러 무대에서 이 곡을 부를 기회가 생겼고 지금에 이르게 된 내게는 보석과 같은 존재다."
- 루크 맥퀸의 서른 즈음은 어땠는지?
"거의 20년 전인데... 정말 바쁘게 지냈던 30대였다. 미국에서 IT 관련 여러 업무를 하면서 출장을 밥 먹듯이 했다.(웃음) 돈도 많이 벌었고, 결혼생활도 했고. 그러면서 음악 관련된 일도 일종의 부업처럼 즐겁게 했다. 그 때 재즈의 거장 데이브 그루신(Dave Grusin)·돈 그루신(Don Grusin) 형제와도 친분을 쌓았고, 돈 그루신은 이번 앨범 첫 트랙 '스틸 커넥티드(Still Connected)'란 곡에 참여해 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 한국에서 뮤지션으로 활동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2013년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 겹쳐졌다. 당시 전 세계를 뒤흔든 미국발 '모기지사태'로 나 역시 소위 '하우스푸어'가 됐고, 심적으로 한때 황폐해 졌다. 그런데 오히려 내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됐다. 내가 태어난 나라인 한국에 와서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도 찾고, 일도 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해줬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놓치 않았던 음악을 주위 많은 분들의 적극적 도움에 힘입어 늦은 나이의 시작이지만 프로 뮤지션으로서 인생을 살게 됐다."
- 현재 음악인으로서만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 현재 소속회사에서 해외관련 업무도 담당하면서 음악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정규앨범도 꽤 많은 제작비를 회사에서 부담해 발매한 거라 수익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커지고 있다.(웃음)"
- 성장하면서 음악은 어떤 의미였나?
"10대 전반에 걸쳐 음악은 나에게 '탈출'의 의미였다. 노래를 듣고 부르고, 곡을 쓰던 모든 순간들이 행복 자체였다. 당시 미국의 부모님들은 내가 음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전혀 도움을 안 주셨다. 나중에 아버지께서 미안하다고 말해주셨고, 오히려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듯하다."
- 영향을 준 아티스트가 있다면?
"성장기 시절 즐겨 들었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와 아일랜드 밴드 유투(U2)가 대표적으로 영향을 줬고, 콜드플레이(Coldplay)와 밴드의 보컬리스트 크리스 마틴(Chris Martin) 역시 내게 큰 영감을 여전히 주고 있다."
- 한국에서 활동을 하는데 언어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아쉽게도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기회도 없었고,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영어로 소통할 일이 많다보니 그랬던 것 같다. 계속 한국어 공부를 하는 중이고, 레벨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도록 열심히 꾸준히 해 보겠다.(웃음) 회사에서도 홍보활동을 진행함에 있어 언어 때문에 여러 제약과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한국어로 공개석상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없나?
"동영상 사이트에서 '어라운드 30(서른 즈음에)'의 후반부 후렴파트를 한국어로 노래한 라이브 클립들이 있다. 내년에는 '서른 즈음에' 원곡 가사, '롱잉'을 한국어 노랫말로 개사해 다양한 라이브 무대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기다려 주시기 바란다.(웃음)"
-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 활동이 있다면?
"뮤지션으로서 내 창작 곡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싶다. K-Pop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음악 팬들이 즐기는 주요 콘텐츠가 돼 너무 기쁘다. 재능 있는 한국의 젊은 뮤지션들이 글로벌 마켓에서 멋지게 성장할 수 있도록 영어 발음이나 노랫말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일련의 프로듀서로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한국은 루크 맥퀸에게 어떤 곳인지?
"내가 태어난 나라다. 다섯 살 때 미국의 한 가정으로 입양돼 언어, 음식, 문화 등 모든 것이 오랜 세월 낯선 곳이었지만, 중년의 나이가 돼 지금 내가 정착해 살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10년 뒤에도 나는 이 곳에서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한 사람으로서 있을 것이고, 내게 큰 도움을 준 사람들과 함께 살아 갈 거다. 시멘트의 강도만큼이나 탄탄한 인생을 한국에서 뿌리 내리고 싶다."
수원 Oh My News -- 원문